[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지역 활력의 답, 사람을 부르는 여백

시장 현대화·청년 창업지원에도 효과 미미
기획 틀에 갇혀 자율성·잠재력 사라진 공간
안정적 기반마련 못할땐 임시방편 그쳐
커뮤니티·전시 공간 등 유기적 연결 필요

도심을 거닐다 보면 한때는 북적였을 전통시장이 텅 빈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문을 닫은 상점들, 한산한 거리, 오가는 발길이 끊긴 공간들. 대도시라고 문전성시는 아니겠으나, 인구 몇 만의 소도시에서는 이런 풍경이 흔하다. 오후 5시만 되어도 조용해지는 거리와 닫힌 가게들, 그리고 다시 고요 속으로 되돌아가는 시장의 풍경. 청년 창업자를 유치하려 애는 썼지만 언제 다시 그 문이 열릴지는 알 수 없다. 지역을 살리는 해법은 무엇일까?

많은 소도시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전통시장 현대화, 청년 창업 지원 같은 정책이 추진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새로 단장한 공간은 생기가 돌지만, 아주 잠시다. 문제는 단순히 공간이 비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텅 빈 공간을 채우려는 우리의 방식이 여백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텅 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전통시장을 현대화하고, 청년 창업자를 유치하는 과정은 겉보기에는 정돈되고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공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사용자들에게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정 구역을 정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범위 내에서만 활용하도록 설계된 공간은 창조성이 없다. 결국 공간을 획일적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청년 창업 유치를 중심으로 한 정책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떠나고, 지역은 다시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을 겪는다. 청년 유입만이 지역 활성화의 해법일 수 없다. 오히려 기존 주민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자율적인 변화가 중요하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 주민들은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그들은 단순히 소비자나 수혜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이나 유휴 공간을 지역 어르신들이 창업자와 협력해 공동 상품 개발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대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만나는 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 노년층의 삶의 경험은 청년층의 창의력과 결합했을 때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스페인 갈리시아주의 ‘루랄 랩'(Rural Labs) 프로젝트가 그 좋은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농촌의 빈 공간을 실험적 활동의 장으로 전환했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었으며, 외부에서 온 방문객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 역시 지역 주민과 협력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 성공적인 사례다. 마을 전체에 분산된 농가, 수도원, 성 등 유휴 건물을 숙박시설로 사용함으로써 기존 호텔과는 다른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하면서 지역의 역사적 유산을 보존한다.

텅 빈 공간은 단순히 ‘채워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여백이다. 공간을 단순히 외형적으로 꾸미거나 특정 용도로 제한하기보다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공간 활용의 방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용도 변경이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길 필요가 있다.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방식이 필요하다. 일본의 빈집 프로젝트처럼 공간을 저렴하거나 무료로 제공하며 새로운 시도를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다른 방향은 다양성이다. 공간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채워지는 것을 막고, 다양한 활동이 공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텅 빈 시장과 상가는 단순히 상업적인 공간으로 채워질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일부 공간은 지역 어르신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또 다른 공간은 전시회나 창업자들의 실험실로 활용할 수 있다.

80대 이상의 인구가 주를 이룬 지역에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좋지만, 어르신들을 위한 피트니스 클럽과 요가 센터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나아가 시장과 지역 상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시니어들만이 주로 사용하는 생활체육시설이나 빈집 정비 사업에 청년 지원 사업을 연계하는 것이다. 예산 절감과 더불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각 소도시들이 협력하듯, 지금은 각개전투가 아니라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서 협력해야 할 시점이다.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비었다’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여백이다. 이 여백은 사람들이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된다. 텅 빈 시장과 조용한 거리는 그 자체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채우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비어 있는 공간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주민이 중심이 되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여백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끌어내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활성화가 가능하다.

지역 활성화의 해답은 텅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가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을 어떻게 남겨두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창조적 여백은 단순히 ‘채우는 것’이 아닌 ‘남겨두고 기다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를 통해 텅 빈 시장과 장식된 거리를 넘어, 사람들의 발길과 마음이 머무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디지털타임즈(오피니언/칼럼)
입력 2024-11-20 18:4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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