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낭만에 대하여[오마이뉴스, 2025.02.16]

[에디터의 레이더] <낭만 도시> 연재하는 김은아 시민기자

<편집자의 말>
‘에디터의 레이더’는 오마이뉴스 에디터들이 눈에 띄는 기사를 쓴 시민기자에게 직접 기사 뒷얘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낭만. 나에게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다. 한석규 주연의 <낭만 닥터 김사부>. 시리즈 드라마로 3편까지 나왔지만 기약 없는 4편을 기다리는 게 바로 나다. 또 하나는 ‘낭만에 대하여’로 유명한 가수 최백호. 내 나이와 어울리는 않는(?) 최애 가수 중의 하나다. 주로 젊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다시 부른 것을 듣게 되면서 팬이 되었다. ‘아이야 나랑 걷자'(아이유), ‘길 위에서'(싱어게인 64호 가수 서기) 등.

그런데 이제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김은아 시민기자의 연재 <낭만 도시>다.

그는 뜨거운 태양 볕에 고양이들 더울까 봐 우산을 펴 그늘막을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에서, 시골에 살면서도 한 번씩 경운기를 타고 읍내에 나가 커피를 마시는 농민들에서, 민박집에서 만난 허름하지만 정갈한 목화솜 이불에서, 엄마가 충청도 사투리로 ‘기’라고 부르는, 칠게를 찾아 40여 년 만에 가 본 광주 말바우장에서, 수영장에서 만난 내복 위에 브래지어를 한 할머니에게서, 한겨울에 눈 맞고 자란 냉이에서 낭만을 발견해 글로 풀었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한 그런 것들에서 김은아 시민기자는 그만의 낭만을 찾아냈다. 그 글을 읽은 나는 ‘어떻게 이런 장면에서 낭만을 포착했을까?’ 궁금한 순간들이 많았다. 말 걸고 싶은 순간들. 지난 4일 “내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러니 몸에 좋을 수밖에 기사를 편집하면서 더 그랬다.

캐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밭에 쭈그려 앉아 냉이를 캐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캐보지 않고서 어찌 냉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지금 캐는 것은 냉이가 아닌 냉이의 삶이다.

그의 말마따나 낭만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호사’인지도 모른다. 낭만을 구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낭만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때론 자신의 몸을 낮춰, 때론 방향을 틀어, 때론 이면에 숨은 낭만을 캐내는 김은아 기자의 삶과 글이 더 궁금해졌다. 아래는 지난 7일부터 며칠간 김은아 기자와 서면으로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조회수 터진 민박집, 이불 상태는 모르고 갔지만

오마이뉴스에 <낭만 도시>를 연재 중인 김은아 시민기자. ⓒ 김은아 제공

– 기자님의 두 번째 연재기사 <낭만도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보그 춘양>을 연재하셨고 영문으로 책까지 내셨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이 대한민국 최대 오지라서 조금 쉬면서 재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건강이 악화됐어요. 그때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죠. 정년 보장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어차피 100세 시대인데 오래도록 즐기면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가 있는 금산으로 왔어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지금은 도시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건강 관리도 같이요.”

[관련 기사]
김은아의 낭만도시 https://omn.kr/2a5nc
보그 춘양 https://omn.kr/2065f
“춘양에선 외롭지 않을 것” 캐나다 할머니들도 열광한 K-농촌 https://omn.kr/27orb

– 이번 <낭만도시> 기획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2012여수세계박람회와 같은 문화와 공간 기획, 도시재생 등 이런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해왔고, 또 손을 뗀 지도 꽤 되었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어요. 자본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저는 시민들이 돈 없이도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머니 사정이 다 제 각각이니까요.

낭만도시를 표방하는 지자체들이 많은데 대부분 하드웨어와 축제 중심이거든요. 무언가 보여줄 화려한 랜드마크나 야간경관 그리고 떠들썩하게 언론 지면을 채우는 축제에 너무 집중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웹에서 낭만도시를 뭐라고 하나 찾아보니 베네치아, 파리, 프라하 등 아름다운 관광지를 낭만도시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사실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잖아요. 복지도 잘 되어 있고, 공공시설도 잘 되어 있고요. 그런데 막상 집을 나가면 머물 곳이 없어요. 밖에 나가 마음껏 즐기고 쉬고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그러려면 돈을 지불해야 해요. 건물 속으로 들어가서 문화강좌를 듣거나 카페에 가거나 웃음치료 교실에 가거나 각종 동호회 활동을 해야하는 거죠.

‘낭만’을 아름다운 도시, 와인, 노을이 비치는 멋진 바다, 근사한 호텔, 커플 등으로 한정짓는 것은, 낭만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가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자체들의 낭만도시나 기업들의 낭만 선언에 좀 반감이 들었죠. 그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낭만만 이야기하니까요.

좋은 사회는,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는 돈이 없어도 즐기고 놀 수 있는 공간과 즐길거리들이 일상에 많아야 하고,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낭만 거리를 전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 기자님의 글은 기본적으로 푸근함, 따스함이 장착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시선은 제가 자기애가 강해서 그럴지도 몰라요. ‘내가 그 사람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항상 먼저 들어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제가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래요. 저와 크게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들의 입장으로 들어가 봐요. 그러면 제 모습도 보이고, 상대의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그런 게 공감이죠. 주변 사람들도 제가 ‘듣기’를 참 잘한대요. 정말 열심히 듣는다고. 열심히 들으려면 머릿속에서 제가 할 얘기를 생각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쏙 빠져야 하잖아요. 제가 좀 그런 편이라 글에도 그런 점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 춘양 기사를 볼 때도 그랬지만, 할머니의 특별한 ‘고양이 서비스’가 만든 낭만, 시골로 간 도시 카페, 분위기가 참 다르네요, 내복 위에 브래지어 입은 할머니가 꺼낸 말 등등의 낭만기사에서도 할머니들에 대한 기자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데요. 할머니들에게 유독 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아서 나이 60이 되면 인생을 완성해서 자아실현이라는 게 되는 줄 알았어요. 세월만큼 인격이 성숙해져서 60이 되면 아주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빨리 60이 되고 싶었죠. 그런데 어르신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세월이 그냥 데려다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젊은 날의 생각과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가 그대로 굳어지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할머니들을 본 건 춘양에서가 아마 처음일 거예요.

앞서 제가 자기애가 강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분들이 남 일같지 않았어요. 저도 언젠가는 호호할머니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사랑해 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생의 마지막을 다들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제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을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살다 가고 싶기도 하고.”

–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이 기사는 포털 등에서도 굉장히 많이 읽혔어요. 솔직히 이 글을 보면서 저는 결코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평소의 저라면 그런 민박집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서요(하하). 사람들은 대부분 (아닐 수도 있지만) 깨끗한 것, 새로운 것, 빛나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조금은 지저분한 것, 오래된 것, 묵은 것들의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요. 그래서 기자님 글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아마도 이 글에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솜이불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있던 감나무, 솜이불… 그런 것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않았을까 싶지만 솔직히 조회수가 높았던 건 제목을 잘 뽑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그 민박은 사실 저도 그런 집인 줄 모르고 갔거든요. 에어비앤비에 이불까지는 안 나와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서 보니까 웃음이 나왔죠. 이런 이불을 지금도 쓰는 사람이 있구나. 그냥 마을에 있는 한 집에서 방 한 칸 얻어 쓰는 건데 가끔은 이런 곳이 더 좋더라고요. 어딜 가나 비슷한 호텔과 달리 훅 치고 들어오는 유쾌함 같은 게 있어요.”

▲꽃무늬 이불수 십년 전,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 준 이불이 생각난다. 목화솜을 타서 광목으로 씌우고, 가운데는 꽃무늬 수를 놓은 비단을 덧댔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미처 생각조차 못했던 이불이다. 민박하기를 잘했다 싶은 순간이다. ⓒ 김은아 [관련기사보기]

잘 듣고 귀 기울이면 보이는 낭만

– 최근 기사에서 ‘낭만이라는 것이 버스 터미널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다…. 아는 자만이 낭만도 누릴 수가 있나 보다’라고 쓰셨는데, 낭만을 찾기 위해 기자님이 노력하시는 게 있을까요?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주변에서 낭만을 찾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봐요. ‘온 천지가 먹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있어요. 자세히 보고, 자세히 들어보면 마음에 울림이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각자의 여건에 따라 멀리 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떠날 수 없는 사람도 있어요. 방정식처럼 머릿속에 입력된 특별한 것, 낭만. 이제 이런 것들은 좀 지워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사회도 성숙했고, 다름에 대한 존중도 할 줄 알고요.

돈으로 사는 낭만은 돈이 없으면 즐길 수 없지만, 돈이 없어도 낭만을 찾고 누리면 그건 암반수처럼 수도세 안내고 계속 먹고 마실 수 있거든요. 길을 가다 작은 토끼풀꽃을 꺾어다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줄 수도 있고요. 들꽃 한 송이 꺾어 딸아이에게 주며 ‘꽃보다 더 이쁜 딸’이라고 불러도 줄 수 있잖아요. 누구나 낭만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그걸 쓰는 법을 몰라서 그래요. 열기만 하면 돼요.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든지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요. 생각의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요.

가령, 추울 때 발을 동동거리면서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포차에서 먹는 붕어빵이 얼마나 맛있어요. 서민 음식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럭셔리한 간식은 없는 것 같아요. 마치 머리는 시원하고 몸은 뜨거운 노천탕에 있는 것처럼요. 그게 붕어빵의 매력인 거죠. 노점, 서민, 화려하지 않음. 이러한 인식들이 생각을 가려서 그 이면의 멋짐을 못 보는 것 같아요.”

▲특별한 ‘고양이 서비스’, 할머니의 그늘디자인포도덩굴은 할머니보다는 두 고양이를 위한 할머니의 특별서비스이다. 행여 햇빛이 들어와 더울까 우산까지 이중으로 씌웠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거나 해질녘에는 ‘딱’이다. ⓒ 김은아 [관련기사보기]

– 그렇다면 기자님에게 낭만은 뭔가요?

“낭만은 사랑이죠. 함께하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것요.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가고, 감추려해도 감춰지지 않는 강인함 같은 거요. 떠들썩하게 ‘여기 낭만이 있다’ 하고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거요.”

– 앞으로 쓰게 될 <낭만도시> 계획이 궁금해요. 또 다른 고민하고 있는 글쓰기가 있다면 그것도 궁금하고요.

“당초 의도했던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 더욱 낭만적인 삶을 위한 공간의 방향 같은 것을 다루고 싶어요. <낭만도시> 1회 고양이의 그늘 서비스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할 수 있는 것들요. 도시 디자인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일상으로 풀어보려고 해요. 일단, 도시 공간에 대한 글은 지속적으로 쓰고요. 오래전부터 길 위의 식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우리가 흔히 밟고 지나가는 식물들 있잖아요. 질경이, 민들레, 토끼풀 같은 것들요. 식물에 대한 지식 전달보다는 식물의 삶과 그들이 우리 삶에 주는 메시지 같은 것들을 써보려고 해요.”

최은경(nuri78) 기자

출처: 오마이뉴스
입력: 2025.02.16 18:51

조회수: 2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