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볕이 깊어졌다. 사람들은 본능처럼 나무 그늘을 향해 걷고, 바람이 드는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문다. 공원은 도시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다. 단지 나무와 길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스며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근 충청남도 내포신도시와 서울의 경의선숲길처럼 도시 곳곳에서 자연을 들이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단순히 녹지 면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령화, 다문화,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 도시는 복합적인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공원은 기억을 담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유엔 해비타트(UN-Habitat)는 ‘도시의 공공녹지는 정신 건강과 사회적 연대, 회복 탄력성의 기반’이라 말한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원 이용률은 급증했다. 공원은 사람과 자연, 세대와 세대, 낯선 이웃들 사이의 정서적 교감과 연결이 살아나는 감성 인프라이다. 뉴욕 센트럴파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관계의 장을 만들었고, 코펜하겐의 ‘휴먼 라이브러리’는 사람이 책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 편견을 허물기도 했다. 단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숲은 연간 500만 명이 찾지만, 평균 체류 시간은 1시간 남짓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숲은 있지만, 사람을 붙들어 맬 ‘관계’라는 것이 부족해서다. 도시공원은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디자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론토와 멜버른처럼 주민의 기억과 경험을 디지털 지도에 담아 설계하는 ‘참여형 정보지리시스템(PPGIS)’, 세대가 함께 경험을 나누는 공유 인프라, 계절과 시간에 따라 쓰임이 변하는 가변적 공간 활용 등이 그 실천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음식 칼럼니스트 마크 비트먼은 “우리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을 때 가장 건강하게 작동한다”라고 말한다. 공원은 사람과의 관계를 도시 한복판에 시각화하는 장소이다. 기억이 머물고 생성되는 곳 말이다.
공존은 구호가 아니다. 설계이고, 구조이며, 감정이다. 도시의 공원에는 마침표가 없다. 공원은 쉼표이자, 물음표이자, 느낌표이다. 끝없이 관계가 만들어지고, 기억이 확장되는 살아 있는 풍경이다.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기도 하다.

출처: 한국일보(오피니언)
입력: 2025.04.23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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