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큰 나를 위한 선택

“신발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오죠. 그 사람의 성격도 보이고요.”
구두를 수선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다.
신발에 배인 삶의 흔적
신발은 가지 않는 곳이 없고, 밟지 않는 곳이 없다. 온갖 더러운 곳도 아름다운 꽃길도, 험악한 길도, 사람의 두 발이 디딜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길이 된다. 주인을 신처럼 모시고 사는 발이니 주인의 성격도 삶도 철학도 모두 배어난다. 그래서 신발 수선장인들은 신발만 보고도 그 사람의 삶의 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신발장을 열어보면 내가 걸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쿠션이 닳은 운동화, 한쪽 굽만 닳은 구두, 겨울이면 꺼내신던 털부츠, 사계절 할 것 없이 신던 로퍼 그리고 여름 슬리퍼. 고단한 길, 험난한 길,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 그리고 행복했던 길. 눈부시게 빛났던 어느 순간들의 길. 모든 길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발은 자신의 철학이자, 가치관, 쉽게 말하자면 평생 자신이 있게 해 준 자신만의 신념과도 같은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 신발을 벗는다는 건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사회의 기대, 타인의 시선, 스스로 세운 기준을 내려놓는 일이다. 자신의 신념도 가치관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의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맨발이 되고 나서야 깨닫는 것
몇 해 전부터 친구가 맨발 걷기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를 해도 콧등으로도 안 들었다. 황토를 보내줄 테니 집에서라도 걸으라고 했지만, 그냥 웃고 말았다. 얼마 전 산책을 하러 갔다가 아침 햇살에 빛나는 오솔길을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맨발 걷기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켠에 세워진 싸리 빗자루와 한 방향으로 쓸려진 황톳길이 말해준다.
잠시 망설이다 그 정갈한 분위기와 청신한 햇살에 발을 내주고 말았다. 하루종일 밖에서 걷다 퉁퉁 부은 발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쉬게 하는 안도감이라고 할까. 바닥이 딱딱하고 솔잎과 나뭇잎들이 나부끼니 조심조심 발을 디뎌본다. 속도는 느리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롯이 깨어나는 것 같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맨발 걷기를 하는구나’ 싶었다.

자연의 빛, 소리, 온도, 습도, 냄새 등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다. 엑스레이 사진 찍듯이 투명하게 모든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잠시 멈추고 이 감각을 깨우는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심을 잡게 하는지를 알 것 같다. 맨발 걷기는 중심이 중요하다. 길의 굴곡이 있고 바닥이 딱딱하니 미세한 근육을 쓰게 되고 전신의 균형감을 요하는 것 같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중심만 잘 잡는다면 그렇게 아등바등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데 혼자 속을 긁어대고 옆 사람한테 화풀이하기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잘 먹고 맨발로 걷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진즉에 걸어볼 것을 왜 그때는 안 했나 싶다. 그럼 그렇지. 항상 후회는 후에나 하는 것이지.
청춘만 맨발이 아니라
이렇게 벗어버리면 편할 것을 여태껏 온갖 신발을 끌어안고 살았을까. 발을 보호함도 있지만, 사회적 신분과 표징을 위해서도 다양한 신발을 철철이 갖춰놓고 있다. 딱딱한 구두부터 운동화, 슬리퍼에 이르기까지. 그저 맨발로 걸어도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만큼 가진 것 없어도 진실하고 열정적인 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삶이 익어갈수록 우리는 더욱 맨발이어야 하지 않을까.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아니 신발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적어도 삶의 속도에 바짝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몸이 세상을 읽는 가장 원시적인 사고다. 말보다 먼저, 사유보다 깊게, 몸은 세상을 느낀다. 맨발로 걷는다는 건, 감각과 본능이 나를 다시 안내하는 일이다. 결국, 깊이 있게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다. 뇌가 사고하는데 방해받지 않는 유일한 행위는 걷기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장 자크 루소, 니체, 칸트, 괴테, 소로 등 수많은 예술가가 산책을 즐겼고, 깊은 사색을 통해 빛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더 큰 나를 위한 선택
길가에 고욤나무(쌍떡잎식물 감나무목 감나무과의 낙엽 교목) 꽃이 흩어져있다. 고욤나무는 감당할 수 없는 열매를 조용히 돌려보낸다.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고, 꽃받침마저 땅으로 돌아간다. 생존을 위한 ‘선택적 포기’를 하는 이 고욤나무. 미처 열매가 되지 못한 채 땅바닥에 ‘툭’ 떨어져 버린 고욤이 그리 말하는 것 같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큰 나를 위한 선택이에요”라고.
‘네 신을 벗으라. 이 땅은 거룩한 곳이니라.’ 이 말을 우리 자신에게 한다면 ‘네 생각을 내려놓으라. 네 삶은 고귀한 것이니 온전하고 청신한 생각으로 살라’는 것이지 않을까.
맨발로 걸어보니 속도보다 중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 같다. 한 발 한 발 차분히 발을 디뎌 나를 다시 세운다. 마치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병아리 새끼마냥…. 우리 삶에는 언제나 리셋이 필요하다. 매일 태양이 새롭게 떠오르듯이 말이다. 가끔은 신발을 벗어보자. 더 큰 나를 위해.

덧붙이는 글 | 우리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삶을 살아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 어렵고 큰 일을 하는 우리가 왜 내려놓는 일이라고 못할까요?
출처: 오마이뉴스
입력: 25.06.15 15:23 최종 업데이트 25.06.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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