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7살 많은 동네 누나를 위한 할아버지의 꽃밭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낭만이었네요

아직 잎들이 진한 초록을 풍기지는 않아도 찔레꽃과 아까시나무 향이 진동하는, 그래도 보드라운 봄 녘이다. 크리스찬 디오르도 만들어내지 못할 향기다. 더 깊이 들이마실 수만 있다면 더 담고 싶은 이 계절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도심을 걷다 보면 도시재생으로 구도심이 새 옷을 입을 준비를 하고 반면에 아직 새 옷이 준비되지 않아 낡은 옷을 정갈하게 입고 있는 공간도 있다.

할아버지의 꽃밭

오래된 건물이어도 관리가 잘 되어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이 도시의 행정기관이 자리한 주변에 다가구주택과 아파트들이 참 많이도 있다. 3층짜리 단아한 건물에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있는 화단에 눈길이 멈춘다.

▲할아버지의 꽃밭여든이 훌쩍 넘으신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가꾸신 꽃밭이다. ⓒ 김은아

이 아파트는 오래전에 지은 건물이라서인지 화단도 비교적 넓고 세대별 가꿀 수 있는 공간도 제법 된다. 할아버지가 풀을 매고 쓰러진 꽃들을 묶어주고 계신다.

“여기 1층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데 거동이 불편하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누나라서 내가 이틀에 한 번씩 와서 들여다봐. 가서 청소도 해주고, 먹을 것도 해 놓고 가.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거든.”

할머니는 86 세시란다. 요즘 스탠다드로는 많은 나이는 아니신데 어디가 편찮으신 듯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조금 아래인 칠십하고도 아홉이라고 하셨다. 7살 많은 누나가 마음에 쓰여 이틀에 한 번꼴로 오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보시라고 수선화, 꽃 잔디, 붓꽃 등을 그리도 이쁘게 가꾸시고 키우신 것이다. 그렇다.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일이다.

▲할아버지의 꽃밭꽃 자체도 아름답지만, 꽃에서 풍기는 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심은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올 때인 것 같다. 마음이 찡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밀려드는 행복함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 김은아

할머니의 텃밭

꽃도 아름답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화단을 가꾸는 그 마음이 더 진하게 와 닿는다. 건너편 아파트 공동화단에는 하나같이 배추, 시금치, 상추 등 각종 채소가 심겨 있다. 할머니가 열심히 호미질을 하신다.

처음엔 그랬다. ‘이 야박한 사람들! 공동화단에 참 이기적이기도 하네. 꽃을 심을 공간에 누가 상추를 심었을꼬’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입주민들이 모두 동의를 하고 심은 공간이라면 어떨까. 형형색색의 꽃이 아니고, 고랑을 내어 상추와 각종 채소를 심은 텃밭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위해 심어놓은 곳이라면 어쩌면 그곳도 아름다운 곳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경관적으로는 익숙하지 않다. 사실 왜 공동화단이 텃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는 이유일 테다. 그러나, 역시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할아버지의 꽃밭보다 못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할머니의 텃밭같은 공동화단인데도 이 곳은 텃밭으로 쓰인다. 가지런히 골을 타서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할머니가 가꾸는 텃밭이다. 익숙하지 않은 경관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이 텃밭이 모두가 원하는 모습이라면 그 안에도 누군가를 담은 마음은 존재할 것이다. ⓒ 김은아

깨진 욕조에 채소를 심고, 낡은 화분에 백합 한 송이라도 심는 그 마음. 누군가를 위해 또는 자신을 위해 심었을 것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공간, 깨끗하고 안락한 공간, 멋진 건축물과 아름다운 카페들이 가득한 곳 물론 좋다. 그러나, 낭만은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의 시선이 감정의 여백에 오래도록 머물며 남긴 여운은 아닐까. 마치 앞날을 기약하듯이 잔잔하게 말이다.

▲깨진 욕조에 담긴 꽃이라도다 깨진 욕조에 꽃과 야채를 심고 가꾸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낡은 의자이지만, 잠시 앉아 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 바라보는 마음이나 매 한가지 아닐까. 햇살을 쪼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것이다. ⓒ 김은아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한 것 같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나서 보는 이 꽃밭은 더욱 고와 보인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한 뼘짜리 정원이다. 낡은 화분, 깨진 플라스틱 통에 심긴 채소마저도 그럴지 모른다.

사람의 온기가 만드는 낭만

꽃이라는 것은 본디 생식기관으로 수분을 통해 열매를 맺기 위한 생산기관이다. 이 작은 정원도 텃밭도 결국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사람의 향기가, 사랑의 마음이 말이다. 그래서 찔레꽃 같은 향기가 퍼져가고 그래도 살 만한 곳이 되는 것 같다.

생각을 바꿔서 보니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낭만이라는 것은 ‘도시의 거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조금 더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더욱 질서 있고 아름답긴 할 것이다. 시간이 더디 가더라도 결국은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생각이 말랑하고 시선이 자유로우면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은 것 같다. 뿌리를 넓게 깊이 뻗고 잔뿌리를 내리면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짠맛을 넘어선 인생의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낡은 것을 다 없앨 필요도 없고 혐오할 이유도 없다.

조금 더 유연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이쁜 것도 고운 것도 보인다. 그것을 찾아서 누리는 자만이 낭만을 느끼는 것이다. 멀리에 있지 않았다. 할아버지 손에 든 낡은 호밋자루에는 멀리 파리까지 가지 않아도 풍기는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다.

꿀벌이 저 멀리 히말라야까지 가서 꿀을 따오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 꽃을 찾아 꿀을 따고, 숙성시켜 변치 않는 꿀을 선물로 준다. 아주 달콤하고 향긋한 꿀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생각을 바꾸면 달리 보이는 것이 많은가 봅니다.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무엇보다 행복해집니다. 오늘이 그런 꿀같은 날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꿀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 꿀같은 달콤함도 누릴 수 있는 매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입력: 25.05.21 15:26 최종 업데이트 25.05.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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