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되묻는 ‘바이오필리아’의 의미

“와! 정말 예쁘다. 이런 데 돈을 써야지!”

봄이 오면 어김없이 나무 시장이 열린다. 마트 앞과 골목길에는 화분과 묘목이 가득 쌓이고, 사람들의 지갑은 닫힐 줄 모른다. 식물 앞에서는 누구나 관대해진다. 초록빛 생명을 집 안에 들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봄날의 초록은 늘 새롭고 도시인의 마음을 부드럽게 흔든다. 이런 현상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즉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연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경향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자연은 과연 진짜 자연일까? 자연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소비하는 건 아닐까? 생명을 돌보는 게 아니라, 기분 전환을 위한 소품 정도로 말이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나무 시장이 열리고, 겨우내 정성 들여 키운 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회색빛 생동감 없는 풍경에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연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본능이다. 김은아 제공

예전에는 자연이 삶과 구분되지 않았다. 마을 어귀 ‘숲정이’는 모두의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나물을 캐고 약초를 채취하며, 필요 이상의 채집은 삼가고 숲을 돌보았다. 자연은 공동체 자원이자, 생명과 공존하는 생활 터전이었다. 이용과 배려 사이에는 오랜 감각의 균형이 있었다. 아이들은 숲에서 뛰어놀았고, 어른들은 손을 보탰고, 계절의 흐름은 일상 속에 녹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숲정이 문화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숲으로 상수리나무(참나무)숲, 왕대숲, 소나무숲이 대표적인데 도토리밭, 대밭, 솔밭이라 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사토야마(里山) 문화의 원형(原型)이 우리의 숲정이 문화이기도 하다. 숲정이를 포함한 마을 근처의 숲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땔감, 버섯, 약초, 산나물, 목재, 화초류 등 필요한 것들을 얻는다. 마을 근처 산비탈에 자리 잡은 숲은 키 큰나무, 키 작은 나무, 어린 나무, 풀로 아우러진 다층(多層)의 식물사회를 만드는데, 환하고 밝은 그 숲 속에는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지 않는 식물들이 산다. 글: 한국기행한국식물생태보감 KBS 사진 제공

하지만 도시의 자연은 다르다. 실내 정원과 공원은 사람 발길을 잡아매도록, 화려하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설계된 ‘상품형 자연’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고, 때로는 사진 속 배경으로 소비하며 지나친다. 생명은 점점 배경이 되고, 도시는 더욱 단절되어 간다. 녹지율이라는 수치만 높이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도시의 모습일까?

이제 도시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해야 한다. 아파트 단지 조경이 주민이 함께 가꾸는 작은 숲정이가 되고, 도시공원이 돌봄과 배움의 장소가 되며, 건축 설계에 실내 정원과 공유 녹지가 포함된다면, 도시는 다시 자연과 연결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을 정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계절 생태 교육, 주민이 가꾸는 나무 한 그루 같은 일상적 실천이 도시 안에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자연과 다시 이어질 수 있다.

바이오필리아는 인간의 자연을 향한 일방적인 갈증과 사랑, 즉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질문이어야 한다. 도시는 계속 진화하고 있고, 도시민은 만족할 만한 삶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Permaculture Practice

도시 디자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존법을 묻는 태도이자 철학이다. 바이오필리아는 본능이 아니라 질문이다. 자연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할 때, 진정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 순간 도시도 사람도 자연과 공존하는 감각을 되찾게 될 것이다.

출처: 한국일보(오피니언)
입력:  2025.03.2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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