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여름휴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점이다. 시차를 두고 바뀌는 지인들의 SNS 프로필이 흥미롭다. 화려한 건축물이나 미슐랭 레스토랑 인증샷은 며칠이면 관심사에서 사라지지만, “공기가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밖에 있었다”는 짧은 문장에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산책로에서 마주친 상쾌한 바람, 가슴을 트이게 하는 맑은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노천카페에서 즐겼던 한가로운 오후. 바로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이런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진정한 여행은 ‘보기’(Seeing)를 넘어 그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상에 잠시 스며드는 ‘경험’(Experiencing)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결국 호흡의 산업이기도 하다. 오늘 이 도시에서 마시는 공기를 내일 다른 도시로 가져갈 수가 없다. 맑은 공기는 당연시되기 십상이지만, 도시의 프리미엄을 결정짓는 가장 정직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코펜하겐 킹스 가든에서의 아침이 그랬다. 인어공주 동상이나 티볼리 공원도 인상적이었지만, 진짜 마음을 사로잡은 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듯한 공원의 신선한 공기였다. 그 맑은 공기 속에 도시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들의 가쁜 숨소리가 리듬을 만들고, 벤치에서 커피를 나누는 사람들의 즐거운 대화가 공원을 활기차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코펜하겐 시민의 일상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이 비엔나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 곳도 화려한 궁전이 아닌 도나우 강변의 평범한 벤치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잠시나마 여행자가 아닌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 파리가 사랑받는 이유도 에펠탑 때문만은 아니다. 튈르리 정원에서 책을 읽는 파리지앵, 센강변에서 와인을 나누는 연인들. 자신들의 삶터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자부심이 파리를 대체 불가능한 도시로 만든다.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도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분 좋은 맑고 깨끗한 공기’이다. 영국의 도시녹화 네트워크 ‘Livingroofs’는 이 현상의 핵심을 “공기가 신선하고 달콤할 때, 사람들은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라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이 직관적인 문장이야말로 맑은 공기의 경제학을 관통한다. 체류 시간이 늘면 노천 식음과 야외 활동이 늘어나고, 일상의 소비가 도시경제로 흘러든다. 이 짧은 연결고리가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핵심이다.
실제로 유럽환경청(EEA)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기 질이 개선된 도시들의 관광 수입은 평균 15% 증가했다. 트립어드바이저의 2024년 설문에서는 여행자의 78%가 “공기 질이 목적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다. 팬데믹 이후 웰니스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맑은 공기는 숙박과 투어의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하는 가장 직관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스위스의 대기질 기술 기업 IQAir(아이큐에어)가 발표한 ‘2024 세계 대기질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델리는 인체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PM2.5) 연평균 농도가 WHO 권장 기준의 20배에 달한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스모그에 가려 희미했고, 밖에서 30분 이상 머무는 것은 고통이었다”라는 여행자의 후기가 과장이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도 숨쉬기 힘든 공기 앞에서는 빛을 잃기 마련이다.

성공적인 관광 도시들은 여행자를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볼거리’가 아니라, 시민을 위해 잘 만들어진 ‘머물 거리’를 가지고 있다.
뮌헨은 강둑을 고정하던 콘크리트 제방을 걷어내고 자갈밭과 녹지를 조성하여 이자르 강을 자연으로 돌려놓았다. 강변에서 현지인들이 수영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평범한 풍경이 오히려 여행자들의 최애 장면이 되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는 도심을 보행자 중심으로 바꿔 차량 통행량을 줄였고, 맑아진 공기 덕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도시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프로젝트도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일정 공간을 녹지와 놀이터로 채워 주민들의 야외 활동 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 이웃 간의 대화가 늘고 커뮤니티가 살아나자, 그 생동감 넘치는 일상이 곧 여행자의 콘텐츠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후기에서 “서울숲에서 아침 산책이 상쾌했다”, “한강에서 치맥을 즐기며 본 노을이 최고였다”라는 구체적인 경험담이 늘고 있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관광객을 위해 만든 곳이 아닌, 서울 시민들이 사랑하는 일상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시민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양질의 관광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여행자가 선택하는 도시의 미래는 분명하다. 더 높은 빌딩이 아닌, 시민이 만족하는 쾌적한 환경과 삶이 있는 일상이다. 최고의 여행지는 맑고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시민이 먼저 사랑하고 만족하는 도시’다.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진정 아끼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을 때,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도시를 밝게 하고, 그 온기가 여행자의 경험을 풍요롭게 한다.
관광객 유치만을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은 상업적 활기로 번쩍여도 공허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민의 애정이 스민 공간은 삶의 온기가 느껴져 여행자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머물게 한다. 화려한 광고보다 진정성 있는 것은 깨끗한 하늘 아래에서 보내는 평온한 오후 한때다. 거창한 마케팅 슬로건보다 강력한 것은 “공기가 너무 맑아요”라는 감탄이다.
깨끗한 공기는 도시의 가장 정직하고 값진 프리미엄이다. 이 프리미엄을 먼저 시민에게 돌려주는 도시가 세계인의 발걸음을 잡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된다. 숨쉬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이고, 살기 좋은 도시가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다. 이것이 맑은 공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도시의 미래다.
출처: 디지털타임즈(오피니언/칼럼)
입력 2025-09-03 17: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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