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스카프] 도시의 연결고리 `벤치`, 시민을 위한 제3의 공간

수천년 전부터 존재해온 휴식과 교류의 장 ‘벤치’
파리 ‘녹색 철제의자’처럼 상징적 이미지 되기도
현대엔 사회적 약자 배제한 적대적 디자인 등장
테이블·충전시설 등 사용자 위한 시설물 되어야

쏟아지는 폭우와 삶아대는 더위가 번갈아 찾아오는, 쉼이 간절한 계절이다. 도시인들에게 공원이나 공공장소에 있는 벤치는 더없이 좋은 쉼터다. 벤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쉼터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도시디자인 요소다.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도시민들에게 매력적인 공간과 편안함을 주고, 도시경제를 촉진하기도 한다.

벤치는 또한, 도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새도 앉을 나뭇가지 하나라도 있어야 머물 수 있듯이, 사람도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사회적 교류가 발생하고 유대감도 생긴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골목길 평상이나 슈퍼 앞 빨간 의자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의자나 벤치는 수천 년 도시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존재해 왔다. 토론 문화가 발달한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사람들은 광장과 궁전에 설치된 석조 의자에 둘러앉아 아이디어를 나누고, 물품을 교환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어떤 맛을 고를지 모른다”라는 명대사를 탄생시킨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벤치, 영화 ‘굿 윌 헌팅’의 두 배우처럼 속을 터놓고 대화했던 벤치, 고단한 삶을 안주 삼아 늦은 밤 홀로 앉아 사색하는 벤치,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벤치, 햇살 좋은 어느 날 산책하다 쉬어가는 벤치….

벤치에는 도시민의 삶과 도시 이야기가 기록된다. 벤치는 단순한 스트리트 퍼니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일상을 벗어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제3의 공간’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도 녹지 시설이나 공공 공간이 늘어나면서 벤치와 같은 시설물들이 많이 설치되고 있다. 중간 팔걸이가 있거나 등받이가 없는 벤치도 있고, 등받이가 불편해 오래 앉기 어려운 벤치도 있다. 다양한 디자인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눕는 등의 행동을 제한하고, 노숙자들이 야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또한, 동일 사용자가 장시간 이용하는 것을 방지해 다른 사용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아닌 배려’의 목적도 있다. 음식점이나 카페처럼 회전율을 높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시민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적대적’ 디자인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앉기에 편안하지도 않지만, 특정 행위를 제약하려고 일부러 갈라놓은 좌석이 심리적으로 불편하다.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았던 영국의 캠든 벤치나 10여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쇠못을 벤치에 박아놓은 독일 작가의 작품, ‘스파이크 벤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벤치 아래에 달린 돈 통에 돈을 넣으면 스파이크가 안으로 쏙 들어가 일정 시간 동안 앉을 수 있도록 했던 벤치다.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개선은 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존재하는 곳도 있다. 도시 디자인의 본질에 역행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관계와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것이며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 물론, 사용자를 고려하여 다양한 형태의 벤치를 설치하는 것은 별개이지만 말이다.

도시화가 심화되면서 벤치는 도시 디자인에서 점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공공 공간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휴식과 교류의 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벤치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게임이나 독서도 할 수 있는 다기능 장소다. 도시학자 얀 겔은 약 100m마다 하나의 벤치가 있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고, UN의 접근성 디자인 매뉴얼에서는 100에서 200m 간격에 하나씩 두는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휴식공간이자 제3의 장소인 벤치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불편하다.

도시에서 모든 건축물이나 시설은 사용자를 위해 존재한다. 특히 편의시설은 잠시 사용하더라도 최적의 경험과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의 형태는 디자인 과정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형태와 기능은 한 짝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에 대한 배려, 디자인의 목적에 대한 면밀한 고민에서 디자인의 기능과 형태가 파생된다.

영국의 ‘롤링 벤치’는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사용자가 레버를 돌려 벤치의 마른 부분에 앉을 수 있다. 루마니아의 회전 벤치는 그늘이나 햇빛에 따라 벤치의 방향을 돌릴 수 있고, 마주 보고 앉을 수도 있어 지역 결속력과 커뮤니티 형성을 더한다.

거기에 USB 충전시설과 테이블을 더하여 간단한 업무를 볼 수도 있게 했다. 작은 시설물이지만 사용자에 대한 많은 고민과 배려가 담겨있다.

벤치는 도시의 고유한 분위기와 정체성을 만들기도 한다. 파리의 룩셈부르크 공원에 있는 녹색 철제 의자들은 파리의 상징적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초록색의 덴마크의 ‘코펜하겐 벤치’는 단순한 휴식공간을 넘어,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앉았던 벤치, ‘굿 윌 헌팅’에서 로빈슨이 앉았던 벤치는 그 담긴 이야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처럼 벤치는 작지만, 도시와 도시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우리가 만드는 벤치가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도시의 모습도 달라진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벤치에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어 스마트해지고 있지만, 벤치가 사람을 위한 시설물임에는 변함이 없다.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과정이자 결과라 할 수 있다. 도시 디자인은 도시민에게 열린 가능성과 행복한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출처: 디지털타임즈(오피니언/칼럼)
입력 2024-07-17 18: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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